김효성 묘역

홍천의 역사여행 김효성 묘역

조선 전기의 무신, 능뜰묘역에
560년째 잠들다

김효성은 조선전기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아버지는 공조판서 김남수(金南秀), 어머니는 해평길씨(吉氏)이며 함길도병마도절제사, 사은부사, 공조판서, 병조판서, 판중추부사 등 역임했다. 계유정난으로 정난공신 1등 및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미상년도에 출생해 1454년에 생을 마감했으며 어릴때부터 효성이 지극해 짝을 지어 날아드는 비둘기를 보고 별거하는 부모를 생각하며 울었다는 김효성의 묘역에서 홍천군의 역사연구로 만나게될 역사관광을 기대해본다.

김효성의 주요 업적

  • 업적 1
    세종 때 대호군(大護軍) 및 병마사(兵馬使)로 왜구(倭寇) 방어,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였다.
  • 업적 2
    도진무, 조전절제사로 여진(女眞)정벌을 하였다.
  • 업적 3
    함길도병마절세가 되어 6진(六鎭) 개척과 방어를 하였다.
  • 업적 4
    문종 때 1450년(문종 즉위년) 8월 ~ 1451년(문종 1년) 1월 사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 업적 5
    중추원사, 도진무, 추밀원사 등을 역임. 문종이 편찬한 진법(陣法)의 수정과 교정에 큰 역할을 하였다.
  • 업적 6
    단종 때 계유정난(癸酉靖難) 참여하여 정난공신 1등을 하였다.

김효성 묘역의 현황과 문화유산적 가치

위치
  • 홍천군 북방면 능평리 산11-12번지
구성
  • 제1계(상계), 제2계(중계), 제3계(하계)로 모두 3계로 조성
  • 묘비, 상석, 장명등, 신도비, 석인(石人)으로 구성
김효성 묘역의 문화유산적 가치
  • 15세기 묘 가운데 가장 완전한 완형 보존이 되어있다.
  • 15세기 묘의 특수 사례로, 묘제(墓制) 역사라고 하는 측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 석물설치와 계체석(階砌石), 묘비와 신도비는 당시 전형적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어 역사, 문화적 예술적, 측면에서의 가치가 있다.
  • 문화유산 교육장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김효성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