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남궁억 기념관

한서남궁억 기념관

독립 운동가 한서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사랑

한서남궁억기념관은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의 고귀한 민족 사랑의 정신을 기리고,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고 되돌아볼 수 있게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장으로서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한서남궁억 기념관

기념관 안에는 남궁억 선생의 저서와 붓글씨, 독립신문, 황성신문 등의 전시품과 직접 지으신 애국의 노래도 청취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전시품

  • 저서: 동사략, 조선이야기
  • 황성신문 창간(황성신문 영인본)
  • 무궁화 십자당 사건 취조장면(디오라마)
  • 건국훈장 국민장
  • 보리울 모곡학교 복원모형
  • 상장
  • 남궁억 선생 붓글씨(열폭병풍)
  • 무궁화 자수지도
  • 남궁억 선생 궁서체 글씨
  • 가정교육책자
  • 무궁화 심자당 사건 재판기록(20권)
  • 교육월보 책자
  • 독립신문 발행(독립신문 영인본)
  • 청취코너(주일학교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한서 남궁억 선생

한서 남궁억 선생

1863-1939년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셨으며 독립운동가, 교육자, 언론인, 종교인으로 활동하였다. 서재필, 이상재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황성신문 사장과 대한협회 회장직을 역임하시면서 독립신문, 황성신문, 교육월보 등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에도 앞장섰다.

1918년 홍천군 서면 모곡에 낙향한 후에도 교회와 모곡학교를 설립하여 무궁화 보급 운동을 전개하였고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등 1백여 곡의 애국가요를 직접 지어 보급하였다. 이후 독립운동 비밀결사대인 십자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고 그 후유증으로 1939년 77세의 나이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타계하였다.

이미지 설명은 하단 텍스트 참조 1906년도에 발행된 대한자강회의 기관지
이미지 설명은 하단 텍스트 참조 독립협회가 발간한 독립신문

독립협회와 남궁억 선생의 활동

1896년(고종 33년) 7월 2일, 정부의 외세의존 정책에 반대하는 개화 지식층(서재필을 중심으로 남궁억, 이상재, 이승만, 윤치호)을 지도부로 하고 열강의 침탈과 지배층의 수탈에 불만을 품은 도시 시민층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여 한국의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표방하고 활동하였던 국내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 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의 활동은 국권을 회복하고 민권을 신장하여 국가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민중계몽운동과 시민참여 운동이다. 이러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4월에는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1897년 11월 20일에는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사용하는 한편, 27일에는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 정초식을 거행하고, 독립정신의 상징으로 삼고, 사회정치, 문화, 교육, 언론 등 각 방면에 눈부신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남궁억 선생은 독립협회의 창립 당시부터 협회의 수석총무, 사법위원, 총대위원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모든 살림과 사업을 주장하고 이끌어간 독립협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무궁화와 한서 남궁억 선생

1918년에 강원특별자치도 홍천 보리울(모곡)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사람들을 가르치셨을 적에 일본은 지금 우리나라의 국화(國化) 무궁화를 모두 뽑아 없애고 대신 벚꽃을 심으면서 선전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남궁억 선생은 우리나라의 꽃인 무궁화를 퍼뜨려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학생들의 실습 장소에 뽕나무 묘목과 함께 무궁화 묘목을 심어 길렀다. 그리고는 뽕나무를 보급한다는 구실 아래 전국에 무궁화를 퍼트리고 무궁화를 주제로 한 노래를 지어 가르치며 널리 불리게 하였다.

무궁화 예찬시 : 1923년 한서 남궁억

금수강산 삼천리에 각색초목 번성하다.
춘하추동 우로상설(雨露霜雪) 성장성숙(成熟) 차례로다.
초목 중에 각기자랑 여러 말로 지껄인다.
복사오얏 변화해도 편시춘(片時春)이 네 아닌가.
더군다나 벗지꽃은 산과 들에 번화해도
열흘 안에 다 지고서 열매조차 희소하다.
울밑 황국 자랑소리 서리 속에 꽃핀다고
그러하나 열매있나 뿌리로만 싹이 난다.
특별하다 무궁화는 자랑할 말 하도 많다.
여름 가을 지나도록 무궁무진 꽃이 핀다.
그씨 번식하는 것 씨 심어서 될뿐더러
접부쳐도 살 수 있고 꺽꽂이도 성하도다.
오늘 한국 삼천리에 이꽃 희소 탄식말세
영원 번창 우리 꽃은 삼천리에 무궁화라

무궁화 십자당 사건

무궁화 십자당 사건

남궁억 선생은 기독교계 독립운동 비밀결사단 ‘십자당’을 조직해 민족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가 탐지하게 되어 끝을 맺게 되었으니 1933년 무궁화사건이 그것이다.
1933년 갇힌 후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났으나 감옥에 들어간 지 2년만인 1935년 그 여독(餘毒)으로 1939년 77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무궁화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남아 우리의 민족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모곡학교를 재현한 모형

모곡예배당

남궁억기념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 ‘모곡예배당’은 1919년 9월 한서 남궁억 선생이 현재 자리에 예배당을 건립하고 ‘모곡학교’를 설립하여 ‘무궁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11월 ‘무궁화 사건’으로 선생께서 구속되시고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뜯고 폐교된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한서 남궁억 선생 묘역(강원특별자치도기념물 제77호)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이자 언론인인 남궁억 선생(1863-1939)의 묘역이다. 선생의 묘에는 둥글게 호석이 둘러 있고 봉분 앞에는 제사음식을 올려놓을 수 있는 상석이 있다. 상석의 오른쪽에는 묘비가 있고 그 앞쪽으로 망주석 1쌍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역의 입구에는 돌계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1977년 홍천군에서 조성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