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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회복이야기 ‘고통의 곁은 나눌 수 있는가?’
내용 엄기호 작가의 책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서 고통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끝이 안 보이는 고통의 중심에 서 있는 자와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관계방식에 대해서 다룹니다.

“넌 내 고통을 모른다”

이 말이 고통을 겪어 본 사람에게는 절절한 말이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믿고 의지해서 속에 있는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엄청난 무력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엄기호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통을 겪는 이가 자기가 함몰되면 그 곁도 같이 파괴된다’

저는 10년 동안 조울병, 양극성 장애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훨씬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때서야 인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병을 만나고 수용하기까지(흔히들 ‘병식’이라고도 하지요) 저는 갈 길을 잃은 것 같은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혼란과 방황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공기와 같이 고스란히 스며들고야 말았습니다. 제게는 남편과 세 아이가 있는데요, 언젠가 증상과 투병에 의한 무기력으로 두 달 넘게 누워만 지냈지만, 그 시간은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자책과 가족에 대한 원망을 곱씹으며 공포를 키워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생각이 돌아갔습니다.

나중에는 남편이 저는 신경쓰지 않고, 아이들만 데리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제가 “왜 나를 유령취급하느냐”며 원망을 토해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이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이 일상을 꾸려갈 것이 아니냐!” 며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저만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님을 부끄럽게도 처음 알았고, 평범한 일상을 꾸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양극성 장애를 가진 아내와의 이야기를 담은 <한나의 아이> 저자 스탠리 하우워스는 아내가 병으로 점차 고립되고 소통이 되지 않자 그럴수록 매일, 더 멀리, 달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붕괴되어져가는 가족을 지켜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 저의 큰 아이는 저의 급격하게 변하는 말과 행동에 (그 안에는 감정의 변화가 있었지만 전혀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마치 ‘자동차 스포트라이트 앞의 사슴’처럼 얼어버린 표정을 하고 울지도 못하고 서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벽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 일은 아이들에게 큰 충격이 되었고, 저도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책 <조울병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에서 양극성 장애 엄마의 딸 조지나 에이캔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습니다.

‘엄마가 아플 때면 엄마가 엄마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끝내는 내가 화를 내버리기 때문에 엄마와 적절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좋아질 때까지는 정상적인 삶을 살기 힘들었고 엄마가 아프면 엄마가 다시 괜찮아질 때까지 모든 것을 조심해야 했다. 엄마가 무슨 일로든 흥분하면 엄마가 조증이 생길까 걱정했고, 무엇인가 엄마를 화나게 하면 엄마가 우울해질까 봐 걱정을 했다.’

이렇듯 정신질환은 가족이 함께 힘들어지는 병입니다. 고통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돌아봐야할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의 저는 병을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주치의와 함께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내 병으로 인해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굳게, 아주 굳게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정신질환은 가족이 함께 고통을 겪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과 정신질환자의 자립을 막는 만성화를 막기 위해 치매국가책임제와 같은 책임있고 든든한 정책이 절실합니다. 정신질환이 있어도 더 이상 불행하지 않고 건강한 시민으로서 당사자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1층에는 동료지원상담실이 있습니다.
정신질환을 경험한 당사자와 가족이 다른 당사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을 나누기 위해 상주하고 있습니다. 저도 동료지원가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고통을 이야기 하면서 울고, 웃고, 무엇보다 회복된 당사자의 모습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통의 ‘곁’을 지키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쉼의 공간, 희망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또 이런 공간이 전국에 확대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엄기호의 책으로 돌아와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결국 고통을 나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동행하는 이들과 함께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곁’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고통의 ‘곁’을 지키는 가족들에게도 힘이 되어주세요. 제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권혜경
국립정신건강센터 동료지원가


* 출처 :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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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보건소 건강증진과 정신건강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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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01.12